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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활법률 해
법사전

정상적인 가정을 깨는 계약은 무효

우리 각자 이혼해서 다시 만납시다

유부남·유부녀의 결혼 약속은 무효

서로 이혼하고 다시 만나자는 유부남, 유부녀의 약속은 유효할까. 내연 관계를 정리하는 대가로 돈을 주기로 한 약속은 또 어떨까. 형부와 처제가 오랫동안 함께했다면 부부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법으로 부부는 아니지만 실생활에서 애정 문제가 결부되는 사례는 많다. 법에서는 이런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살펴보자.

〈사례 1〉
늦바람이 무섭다고 했던가. 50대의 A씨(남)와 B씨 두 사람은 각자 배우자 몰래 교제를 시작했다. 서로 정신적, 물질적 도움을 주고받던 이들은 덜컥 결혼을 약속했다. "두 사람은 이혼하고 자녀들이 결혼한 후 다시 결합한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기에는 장애가 많았다. 특히 B씨는 남편과 장성한 자식들을 두고서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작별을 고해야 했다. "미안해요. 우리 사랑은 여기까지인가 봐요. 이혼은 도저히 못하겠어요." 그러자 배신감을 느낀 A씨는 소송을 냈다.

그는 B씨가 결혼하기로 한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했으니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가정법원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설사 A씨의 말이 사실이더라도 유부녀 B씨와의 결혼 약속, 즉 약혼은 법률상의 혼인 관계 파기를 전제로 한 것이라 무효이므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했다. 법에서 유부남 유부녀의 약혼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된다.

〈민법〉 제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

이 조항은 사회윤리나 도덕, 규범에 어긋나는 행위는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청부 살인 등 범죄를 조건으로 한 계약, 성매매 강요를 전제한 채권 관계, 내연 관계를 유지하기로 한 계약 등은 모두 무효이다. 그렇다면 내연 관계 해소를 조건으로 돈을 주고받은 계약도 무효일까.

〈사례 2〉
C씨(남)와 D씨는 내연의 관계였다. 두 사람은 각자의 배우자 몰래 밀애를 즐겨 왔다. 하지만 C씨는 겁이 나기 시작했고 가정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D씨에게 관계를 정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자 D씨는 C씨의 사무실로 찾아와 목소리를 높였다. "정 헤어지길 원한다면 조건이 있어요. 그동안 빌려간 돈 다 갚아요. 그리고 우리 관계 정리할 테니 2억만 주세요. 여기 각서 쓰세요." C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각서를 써주게 됐다.

D씨는 1년이 다 되도록 돈을 받지 못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엔 법정에 선 C씨가 언성을 높였다. "판사님, 각서를 써준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D씨가 하도 사무실에서 소란을 피워 어쩔 수 없이 써준 거라고요. 내연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선 도리가 없었어요. 그 각서는 무효예요." D씨는 각서가 궁박 상태(절박할 정도로 몹시 난처하고 곤란한 처지)에서 작성된 데다 사회질서와 어긋나는 내연 관계와 관련되어 있어서 무효라고 주장했다.

1980년 이와 유사한 사건의 대법원 판례가 있다. 한 남성의 첩으로 살아온 여성이 두 딸까지 낳아 키우고 있었다. 그러다 본처의 강권으로 첩 관계를 해소하면서 남성 쪽에서 그동안의 노력과 희생의 대가, 자녀의 양육비 조로 금전을 지급하기로 약정했다. 당시 대법원은 이 약정이 사회질서에 어긋나지 않는 유효한 계약이라고 판단했다. D씨의 사건을 맡은 수원지법도 이 판례를 들었다.

"부첩 관계의 체결 및 존속을 조건으로 하는 약정은 공서양속에 반한 것으로 무효이다. 하지만 내연 관계를 해소하면서 위자료를 지급하기로 약정하는 경우는 공서양속에 위반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법원은 C씨가 궁박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내연 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돈 문제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을 들어 각서는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정상적인 가정을 깨는 계약은 무효지만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기 위한 계약은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유효하다고 인정한 셈이다.

법원도 인정한 형부와 처제의 사랑

〈사례 3〉
기구한 운명이었다. E씨(여, 61세)는 힘든 인생을 살아왔다. 1965년 결혼한 언니는 20여 년 만에 병으로 세상을 뜨게 됐다. 당시 미혼이던 E씨는 언니 대신 조카들을 돌보면서 형부인 F씨 뒷바라지를 했다. 그러다 F씨와 애틋한 감정을 나누게 됐고 자연스레 동거를 시작했다. 자상했던 F씨는 부부 겸용 신용카드를 발급해주고 부부 동반 모임에 E씨를 데려갔다. 주변 사람들도 두 사람 사이를 부부로 알 정도였다. F씨는 2009년 세상을 떠났다. E씨는 공무원이었던 F씨의 배우자 자격으로 유족연금을 신청했으나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은 유족으로 보기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공무원연금법에 따라 공무원이 사망하면 배우자에게 연금을 지급한다. 법에는 배우자의 범위에 "사실혼 관계에 있던 자를 포함한다"고 되어 있다. 혼인신고는 안 했더라도 부부로 함께 산 사람에게 유족연금을 지급하는 것이 연금제도의 사회보장적 성격에 맞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제와 형부 사이의 결혼은 혼인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 실제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혼 관계에, 혼인 취소 사유까지 겹쳐 있으니 공단이 연금 지급을 거절할 만도 했다.

하지만 법원은 유족연금을 주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 1, 2심을 거쳐 대법원도 2010년 11월 이 같은 판결을 확정했다. 법원은 "비록 근친자 사이의 사실혼이라도 반윤리성, 반공익성이 현저하게 낮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유족의 생활 안정과 복리 향상이라는 연금제도의 목적을 우선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처제와 형부 간 결혼이 혼인 무효 사유였다가 2005년 민법 개정으로 취소 사유로 바뀐 점 ▲두 사람의 사실혼이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점 ▲15년간 결혼 생활로 부부 생활의 안정성과 신뢰가 형성된 점 등을 사실혼 인정 근거로 들었다.

형부와 처제 사이의 결혼,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앞의 사례처럼 사회가 인정해줄 만한 경우도 있지 않을까 싶다. 힘들게 살아온 E씨가 연금으로 편안한 노후 생활을 누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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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국 집필자 소개

서울중앙지법, 동부지법, 가정법원, 고양지원 등에서 법원공무원으로 10년 넘게 일하고 있다. 2009년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는 글을 연재, 20회 만에 조회수 100만을..펼쳐보기

출처

생활법률 해법사전
생활법률 해법사전 | 저자김용국 | cp명위즈덤하우스 도서 소개

법을 바르게 알고 제대로 판단하게 돕는 친절한 법률 안내서. 평소 궁금하지만 어딘가 물어볼 곳이 없어 답답했던 법률 지식부터, 감추기 급급했던 민감한 사안들까지 생생하..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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